DWH/ERP개발관련 SE일을 하며 일본 도쿄에서 5년째 거주하고 있는 30대 여성, 미혼.
몇년간 열심히 일군 인간관계도 소소하게 취미로 삼던 것들도 지겨워져서 모두 덮어두고 어른이 되어서 따분한 새해를 시작한다고 결심을 할 적에, 한동안 필요에 의해 들리곤 하던 홈페이지가 폐쇄를 알리며 달아놓은 영상을 보았고.
이 세상 속에서 반복 되는 슬픔 이젠 안녕
처음에는 저 가사가 반복되는 영상이 머리에 박혔고, 노래가 가슴에 스며들면서 게시판에 접하던 몇몇 영상들을 보며, 소녀들이 하는 행동들이 재미있기도 했다. 솔직히 여자 아이돌에게 유난히 심한 남의 이목 때문에 누구들처럼 망나니짓은 덜하겠지 싶어서 안일한 마음으로 가볍게 시작했던 것이, 분위기가 좋아보이던 팬커뮤니티에도 흔적을 남기기 시작하고, 그 중에 가장 재미있고 까부는 소녀에 관심을 가지며 블로그를 개설하고, 마음을 비우니 귀에 박히는 노래들과 일상이 짜증날 적에 천사는 아니지만 중간 이상은 가보이는 프로같은 애들을 보며 간식으로 먹는 초콜릿이나 케이크처럼 하하호호 웃을 거리를 찾으며 때론 희소팬이라는 점도 즐기면서, 보이지 않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꽃피우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일상이 되버린 지 2년이 지났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그런 생각들에 다시 돌이켜 보기 시작하고, 글을 쓰는 데에도 진심이란 것이 담기기 시작하고, 알면 알수록 성실한 감동을 선사해주는 그녀들을 보면서 역시 똑같은 루트를 반복해서 거치는가 싶으면서도, 남자 아이돌들을 좋아하던 지인들과 함께 나도 쉽게 떠들기 일수였던 여자연예인들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들과 편견을 가진 시선이 어떤 의미이고 본인들에게 상처가 되는지 실감을 하게 되면서 그런 것을 덜 겪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응원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나이를 의식하고 편하게 팬질을 하는 길을 선택하려고 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더라. 그래서 늘 씁쓸하게 '안방덕후'라고 자조적인 위안을 내뱉곤 했다.
늘 예쁘고 발랄하게 브라운관에서 웃는 상품이나 휴식도 없이 돈 버는 기계로 취급을 받는다고도 할 수는 있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멤버가 다수임에도 뭉칠 적의 시너지가 대단하며, 개개인도 상당히 매력적인 그룹이기도 하지 않을까. 실력도 겉절이 같이 욕을 먹을 멤버도 없고, 후배들은 신종플루에 과로로 나가 떨어져도 9명 모두 끄떡없도록 자기관리가 철저하며, 1년 내내 자기들로 시작해서 끝맺음을 내는 위업도 달성하고, 팬덤 뿐만이 아니라 이제는 대중성도 얻어내서 소시를 좋아한다는 것이 덜 부끄럽지 않도록 만들었다, 아무리 웃으며 깍듯이 인사도 말하는 것도 교육이네 가식이네 뭐네해도 꾸밈없이 자유분방하고 털털한척 하며 매너 없는 것들 보다는 훨씬 더 나아 보이더라. 가식은 남자애들도 만만치 않음 -ㅅ-
종종 아이돌 팬이라고 한심한 눈치로 보는 주위 사람들로 한탄을 하겠지만. 한 번 누구 부탁으로 물건을 보내려다가 내가 특이한 여자 아이돌 오타쿠로 오인 받아서 그 다음날부터 프로젝트가 끝나서 떠날 때까지 모든 팀원들에게 인사나 대화조차 거부당한채 눈 앞에 두고 연락도 메일로 주고 받는 왕따 경험을 하면, 우리나라 보다는 개방된 선진국이곘거니 하는 환상은 커녕 이런 얼토당토 않는 이유가 통하는 이 나라가 지랄맞아 보이고, 아이돌이라는 자체에 학을 띨만도 한데, 그래도 소시 그리고 유리양 팬질을 하고 있으니까. 하긴 우리나라에선 일어날 리가 없는 일이지만.
그 아이들은 걸그룹이기는 하지만 그다지 아이돌이라는 느낌도 별로 받지 못한 점도 있으려나.
워낙 외골수에 취향이랄까 철이 없고 관심이 엉뚱한 곳에 쏠리기 일쑤인 사람인지라,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고 무시당하는 거나 아이돌을 좋아한다고 무시당하는 거나 어디서 듣도보지 못한 후진국 동남아 노래나 찾아 듣는다고 무시당하는 거나, 내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도 결국 애니/아이돌 오타들이 하는 일과 별다른 차이는 없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전에 인터넷 기사를 보니 오타쿠들 중에는 SE가 많다더라. -ㅂ-; 그 후로 마음을 비운 채 너그러운 눈으로 보기 시작해니, 오히려 소시팬이 되면서 잡다한 감정에 흔들림이 없이 즐겁게 지내온 것 같다.
그러나, 약 2년동안 해외팬이라는 점은 아랑곳 하지도 않으면서, 가끔 마이너 컴플렉스가 들쑤시는 날이 있었다. 나이 있는 남성팬 분들이야 맨날 자신들을 걸고 넘어져서 삼촌팬이라고 이슈화 하고 떠드니 심기가 불편하시겠지만, 아예 없는 존재로 계속 취급 받으며 살아가는 것도 그리 좋은 기분은 아니라서.그룹은 정말 메이저인데 팬인 내 자신은 여전히 마이너야. 그렇다고 매일 나는 30대 이모팬이에요라고 광고를 해대고 다니는 것도 우습고, 삼촌팬의 성지라고 불리던 소시당에 있던 시절에도 벽에 부딪힌채 부담감에 시달려야 했으니, 팬이면 그냥 팬인 거지 맨날 편가르기 좋아하는 사람들에 삼촌팬이 되었다가 그나마 운이 좋으면 어린 친구들한테 엮어서 언니팬으로 거론 될 때 감사히 여겨하고, 더 나아가 본인들이 가끔 립서비스로 챙겨주는 때에는 감동이라도 해야 될지경이야.
얘네들 외모가 다리도 늘씬하고 예뻐서 내가 하악대며 좋아하겠냐고 젠장.(그렇다고 안 예쁘다는 건 말도 안되지요, 울 소녀들 ^^) 그럴 거면 차라리 근육을 잘키운 짐승돌이라 불리는 애들을 좋아하고 말지. (그래도 빛돌이 자네들은 그런 거 없어도 상관없어요. ;^^)
다 내가 자초한 일이지. 내 八자야, 훗훗~
그래도 성적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만 좋아하다가, 소시가 순위 프로그램에서 1등을 마구하고 올해는 신드롬도 일으키면서 시상식에서도 상을 마구 받으니 신기하긴 하더라.
그리고, 예전같으면 이런 쪽으로는 나 혼자 좋아하고 편하면 좋은거지 싶어서 그저 스트레스 해소용 취미를 즐기기 위해 일하고 생활할 뿐이었는데, 소시를 보니 어린친구도 저렇게 치열하게 살아가는데, 내가 저 친구들 나이 때를 생각하면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묘하게 자신에게 엄격해지며 고삐를 조르게 되더라. 남자그룹 애들을 눈요기나 스트레스의 해소용, 혹은 애증병존(?)의 대상으로만 여기던 때랑은 조금 다른 면일지도 모르겠다. 나이가 많다고 유세떨고 싶지도 않고, 육성 시뮬레이션을 하자는 것도 아니고, 언니처럼 남을 걱정이나 하는 일도 내 적성에 맞지를 않고..
또 이런 식으로 글이 길어지면 위험해져 -_-;
아무튼 소녀들을 응원하는 일, 유리를 지켜보며 별 도움이 안되게 냄새를 피우는 일(?)은 올해도 계속됩니다.
여전히 서툴고 유치하고 저렴한 이야기일지라도 쉽게 그만둘 거면 이 블로그를 시작하지도 않았고,
주위 여건이 작년과는 조금 달라져서 편히 팬질할 시간은 적어지긴 했지만, 까짓꺼 시간을 조금 쪼개면 되는 거고 ㅋㅋ
이렇게 한 차례 피해의식과 잡념을 쏟아놓고 출발했으니, 세상에서 가장 큰 팬심을 자랑하는 팬은 아니지만 가장 긍정적인 팬이 되겠다는 약속은 계속 지켜나가 볼 생각이다.